학년말은 1년을 마무리하며 각종 출제와 행정업무를 처리하는 바쁜 시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년에 지급받을 성과급을 결정하는 다면평가의 시기이기도 하다. 2차고사 출제와 생기부로 안 그래도 바쁜 시기에 교사들은 지난 1년간의 실적을 ‘증빙’하느라 바쁘고, 동료들끼리 서로 등급을 매겨야 하는 잔인한 눈치 게임을 벌인다.
그러나, 교육적 관점에서 실적을 어떻게 증빙할 수 있는가? 유명한 상급학교에 많이 진학하면 실적인가? 시범학교, 연구학교에 단순히 참여하면 실적인가? 기초학력 미달 학생 숫자가 줄어들면 실적인가? 학교폭력 건수가 줄어들면 실적인가? 이에 대한 솔직한 대답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학교는 물건을 단순히 찍어내는 공장이 아니다. 학생들은 매년 그 구성과 특성이 다르고, 교사의 지도 철학 또한 제각각이다. 이러한 교육적 현실에서 일어나는 성장과 변화 역시 질적인 것이지 양적인 것은 아니다. 백번 양보해 양적인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이를 객관적 수치로 환산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수치화하기 어려운 것을 수치화하다 보니, 교육의 본질은 없어지고 기준에 맞는 ‘수치’를 쌓는 데만 치중하게 된다. 예를 들어, 어느 학교는 담임이 다면평가에 유리한 구조일 수 있다. 그런 학교에서 비담임 학교폭력 전담으로 훌륭하게 수십 건의 사안을 처리해도 높은 등급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또 다른 학교는 비담임에 유리한 구조일 수 있다. 이러한 곳에서는 아무도 담임을 맡고 싶지 않아하는 구조에 억지로 떠밀려 개중 힘없는 교사가 담임을 맡게 된다. 그런데 피해가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두 경우 모두 피해자는 대부분 그 학교에 처음 오는 전입 교사와, 그보다 더 늦게 발령받는 신규 교사가 된다. 전입 교사와 신규 교사는 그 학교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도 힘든 것이 현실이지만, 오히려 다면평가라는 늪의 최하층에 던져지는 꼴이다.
학교마다 그 규정이 천차만별인 다면평가는 2가지로 구성된다. 정량평가(80~100%)와 정성평가(0~20%). 위에서 말했듯 정량평가는 학교마다 가중치가 천차만별이다. 물론 그 학교의 풍토에 맞게 자율성이 있는 것은 좋으나 너무 과한 경우 의욕을 꺾기도 한다. 또 다른 문제는, 기준의 해석 또한 모호하고 자의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납득하기 어려운 점수 삭감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싶어도 교사들은 입을 다문다. 정당한 항의가 자칫 ‘깐깐한 사람’, ‘이기적인 동료’로 비쳐 동료 교사들과의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동시에 진행되는 정성평가에서의 감점으로 직결될 수 있다는 공포가 교사들의 입을 막게 된다.
정성평가는 더욱 비정하다. 방식은 크게 두 가지지만, 어느 쪽도 합리적이지 않다. 첫째, 규정(교육공무원 승진규정 제28조의4)에 의해 소수의 다면평가자만 참여하는 경우다. 평가자가 누가 되었는지, 어떤 기준으로 점수를 매겼는지 알 길이 없는 소위 ‘깜깜이 평가’가 이루어진다. 결과에 대한 불신은 필연적이다. 둘째, 그 근거는 불명이나 교사 전원이 서로를 평가하는 경우다. 이는 더욱 가혹하다. 1년 동안 동고동락하며 힘들 때 서로 의지했던 동료를 내 손으로 줄 세워야 한다.
이러한 성과급제 구조 속에서 교무실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장소로 바뀐다. 수업과 생활지도라는 교사의 본업보다 행정 업무와 보여주기 식 실적이 S등급의 기준이 되는 현실은 교원 사기진작과 효율성 증진이라는 제도의 목표와 정확히 상반되어 의욕 없이 소진된 ‘B’급 교사를 양산하는 행태를 보여준다.
제도의 목적이 교원 사기진작이라면서 사기를 꺾는 현재의 제도를 고집하는 것은 명백한 모순이다. 교육은 경쟁이 아닌 협력 속에서 피어난다. 옆 반 선생님의 수업 노하우가 공유되고, 힘든 아이를 위해 머리를 맞댈 때 진정한 교육이 이루어진다. 공교육에 사기업식 경쟁 문화를 도입할 것인가, 아니면 교원학습공동체를 필두로 협력 문화를 확산할 것인가? 교육부와 교육청은 말로는 후자를 원한다면서 왜 제도와 구조로서 전자를 장려하고 있는가?
일각에서는 ‘함량 미달 교사’를 걸러내기 위해 성과급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지적이다. 그러나 일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체 교원에게 모멸감을 주는 방식은 옳지 않다. 일부 교사의 나태함은 끝없는 자기 개선과 동료 간의 교류로 풀어야 하며, 이에 응하지 않는 명백한 직무 태만은 규정에 따른 엄정한 조직관리와 인사조치로 다스려야 할 문제다.
따라서 동료를 심판대에 세우고 관계를 단절시키는 이 비정한 제도는 이제 멈춰야 한다. 기본적으로, 성과급의 차등 지급분을 폐지하여 수당화해야 한다. 전원이 아무 실적도 없이 받는 것이 문제라면 모든 학교에 공통되는 최소한의 지표(직무연수 실적, 교원학습공동체 참여 여부 등)를 달성하면 지급받을 수 있도록 바꾸면 될 일 아니겠는가. 이외에도 교육부와 교육청이 원하는 여러 지표를 관계부처 및 교원단체와의 협의를 통해 넣으면 되는 일이다. 이런 접근이 주요 교원단체에서 주장하는 방향과 달라 인기없는 주장이 될 수도 있음을 알지만, 성과급 자체를 폐지하고 기피되는 학교/사업/직무 단위로 적용되는 각종 수당을 신설해 ‘일하는 학교’ 분위기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교원의 ‘성과’를 평가해 성과급을 준다며 관성적으로 유지되는 ‘성과급제’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S일까, A일까, B일까. 정답은 ‘책임자 중 아무도 알려고 하지 않았고, 따라서 아무도 모른다’이다. 이러한 구조의 대안이 무엇이 되었든, 지금과 같은 비정한 깜깜이 평가 대신 교사들이 서로를 존중하며 ‘교육’이라는 본질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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